정답을 뽑는 개발자 vs 선택하는 개발자
by | GROWTH_ESSAY | 2026-04-05
#AI시대 #커리어 #성장멘토링에서 한 분이 회사 이야기를 했습니다.
"AI 활용이 3달 정도 됐어요. 그 전엔 모르는 거 있으면 네가 고민하지 말고 빨리 선배한테 정답을 받아서 빨리 일을 쳐내라는 분위기였거든요. 지금은 AI한테 물어보라고 해요. 바뀐 건 그것뿐이에요. 똑같아요."
도구가 선배에서 AI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구조는 똑같습니다.
"고민하지 말고 정답을 받아라."
이 구조에서 성장하는 개발자는 없습니다.
정답을 수령하는 문화
많은 회사에서 비슷한 패턴이 있습니다.
신입이 막힙니다. 질문합니다. 선배가 답을 줍니다. "그건 B로 하면 돼." 신입은 B로 합니다. 돌아갑니다. 끝입니다.
왜 B인지는 모릅니다. A 대신 B를 선택한 이유도 모릅니다. C나 D라는 선택지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B가 정답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코드 리뷰도 비슷합니다.
"A라는 문제가 있으면, A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설명 안 하고 그냥 'B쪽 고치면 된다'가 리뷰였어요. 남들은 '아 그러면 B쪽 보면 되는구나' 하고 끝났거든요."
이게 코드 리뷰일까요? 아닙니다. 정답 전달입니다.
왜 B인지, 다른 선택지는 뭐가 있었는지, 트레이드오프는 뭐였는지. 이런 맥락이 없습니다. 그냥 "B로 해"입니다.
도구만 바뀌었습니다
이제 AI가 들어왔습니다.
"모르면 AI한테 물어봐."
구조가 바뀌었을까요? 아닙니다. 똑같습니다.
선배한테 "이거 어떻게 해요?" → AI한테 "이거 어떻게 해?"
선배가 "B로 해" → AI가 "B로 하면 됩니다"
복붙하고 돌리면 끝.
도구만 바뀌었습니다. 사람에서 AI로. "고민하지 말고 정답을 수령하라"는 문화는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더 빨라졌습니다. 선배는 바쁘면 답을 안 줬는데, AI는 항상 즉시 답을 줍니다. 고민할 틈이 더 없어졌습니다.
정답이라는 건 없습니다
개발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A 방식이 맞는 경우도 있고, B 방식이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트레이드오프가 있습니다. 뭔가를 얻으면 뭔가를 포기해야 합니다.
성능을 얻으면 가독성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확장성을 얻으면 단순함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빠른 개발 속도를 얻으면 유지보수성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어떤 걸 선택할지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비즈니스 맥락에 따라 다릅니다. 팀의 역량에 따라 다릅니다. 일정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서 개발자가 하는 일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정답을 수령하는 사람은 이 과정을 건너뜁니다. 선택지가 뭔지도 모르고, 트레이드오프가 뭔지도 모르고, 왜 이걸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받아서 씁니다.
대체 가능한 사람
정답을 수령하는 개발자는 대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AI가 더 빠르게 정답을 주니까요. 선배한테 물어서 정답 받는 속도보다, AI한테 물어서 정답 받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질문 → 정답 수령 → 복붙"이라면, AI가 직접 하면 됩니다. 사람이 중간에 낄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로,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결정하는 개발자는 대체되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A보다 B가 맞아. 왜냐하면 지금 우리 팀은 이런 상황이고, 비즈니스 요구사항이 이렇기 때문이야. C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지금 일정을 고려하면 B가 현실적이야."
이런 판단은 AI가 해주지 않습니다. 맥락을 아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고민해본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질문은 고민에서 나옵니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사람은 AI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AI에게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좋은 질문은 어디서 나올까요? 고민에서 나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고민합니다. 선택지를 떠올립니다. A도 있고, B도 있고, C도 있습니다. 각각의 트레이드오프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막히는 지점이 생깁니다. "A를 선택하면 이 부분이 문제인데,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이게 좋은 질문입니다. AI한테 이걸 던지면 좋은 답이 옵니다.
반대로, 고민 없이 "이거 어떻게 해?"라고 던지면? AI도 일반적인 답을 줍니다. 맥락이 없으니까요. 그 답을 받아서 복붙하면, 또 정답 수령입니다.
고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고민이 있어야 질문이 구체적이 됩니다. 질문이 구체적이어야 답도 구체적입니다.
그 회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그 회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빨리 정답 쳐내라"는 문화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일정은 빠듯하고, 할 일은 많고, 고민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빨리 물어보고 빨리 받아서 빨리 끝내라고 합니다.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입니다. 일이 빨리 끝나니까요.
장기적으로는 재앙입니다. 고민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개발자가 양산됩니다. 3년차가 되어도 선택지를 비교할 줄 모릅니다. 트레이드오프를 말할 줄 모릅니다. AI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리고 AI가 발전하면, 그 사람들은 대체됩니다. 정답 수령밖에 못 하는데, AI가 더 빠르게 정답을 주니까요.
선택하는 개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정답을 뽑는 개발자는 대체됩니다.
선택하는 개발자는 대체되지 않습니다.
차이는 고민입니다.
선택지가 뭔지 알고 있는가.
트레이드오프가 뭔지 알고 있는가.
왜 이걸 선택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게 되는 사람은 AI를 도구로 씁니다.
이게 안 되는 사람은 AI에게 쓰임당합니다.
회사가 "빨리 정답 쳐내라"고 해도, 본인은 고민해야 합니다. 정답을 받기 전에 5분이라도 생각해야 합니다. "선택지가 뭐가 있지? 왜 이게 맞지? 다른 방법은 없나?"
그 5분이 쌓이면 3년 후가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