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 Grit Letter
월 1회 발행
"이 나이에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1년 넘게 준비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AI 때문에 개발자가 다 사라지는 거 아닌가요?"
200명 넘게 멘토링하며 들었어요.
질문은 다르지만 막히는 지점은 같아요.
한 가지 공통점은 모든 문장의 주어에 '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해, 세상이 너무 시끄러웠으니까요.
2025년은 AI가 모든 것을 삼킬 것처럼 몰아친 한 해였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새로운 기술들.
당장이라도 대체될 것 같은 위기감.
마르크스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하나의 유령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AI라는 유령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는 내 목소리를 내기보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숨을 참기에 급급했죠.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실체는 AI 그 자체가 아닙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불확실성,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봅시다.
10년 전, 오늘을 정확히 예측한 사람이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10년 후? 어떤 기술이 뜰 것이며, 어떤 회사가 잘나갈지?
없어요. 그거 맞출 사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지금 이 시대를 이끄는 사람들을 보세요.
많이 읽어요. 자기 언어로 말해요. 자기 문장을 써요.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직업은 상관없어요.
결국 읽기, 쓰기, 말하기예요.
이것이 '인간 역량의 커널(Kernel)'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릇'의 실체죠.
자바를 잘하는 사람이 앞서가는 시대는 끝났어요.
사실, 이전에도 그랬어요. AI가 그걸 드러냈을 뿐이에요.
1637년,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했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심지어 '2+2=4'라는 수학적 진리까지.
"만약 전지전능한 악마가 나를 속이고 있다면?"
"이 모든 게 가짜라면?"
그렇게 모든 것을 부정한 끝에, 마침내 발견한 한 가지.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세상이 전부 무너져도, 끝까지 남는 건 '생각하는 나' 하나였습니다.
이 한 문장이 인류의 사고를 뒤집었습니다.
외부의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고, 내 안에서 진리를 찾아내는
'사유의 독립'이 시작된 겁니다.
400년 전 데카르트가 싸운 상대는 '악마'였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상대는 'AI'입니다.
상황은 똑같습니다.
400년 전의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 다시 도착했습니다.
데카르트는 물었어요.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우리도 물어야 해요. "나는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인가?"
"열심히 하면 되나요?" "잘하면 되나요?"
순서가 틀렸어요.
뭘 열심히 할지, 뭘 잘할지. 그걸 정하는 게 먼저예요.
여기서 AI와 우리의 길이 갈려요.
AI는 우리보다 똑똑하고, 빠릅니다.
수억 개의 데이터에서 가장 확률 높은 정답을 내놓죠.
최적화된 경로, 실패 없는 코드. 그게 AI가 존재하는 방식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때로는 확률 낮은 길을 선택하고,
정답 없는 문제 앞에서 밤새 괴로워해요.
AI는 계산하지만, 우리는 고뇌합니다.
그 고뇌의 시간들. 확률을 거스르며 직접 찍어온 마침표들.
우리는 그걸 '서사'라고 불러요.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더 있어요.
AI는 죽지 않아요.
데이터는 영원하고, 전원은 다시 켜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죽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해요.
바로 그 '끝'이 있다는 사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듭니다.
끝이 있기에 우리는 불안합니다.
내 선택이 틀릴까 봐 두렵고, 시간이 헛될까 봐 조급해지죠.
그러다 안정이 찾아오면, 금세 시시해하며 권태를 느낍니다.
불안과 권태. 우리는 평생 이 양극단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갑니다.
AI는 절대 알 수 없는 감각이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인간의 모든 위대한 서사는 바로 그 '불안'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들로 돌아가 볼까요?
"이 나이에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이제 이 질문이 다르게 들리지 않나요?
이건 무능해서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당신이 유한한 시간을 감각하며, 치열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다시 묻게 됩니다.
"이 불안한 삶 속에서, 나는 어떡할 것인가?"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실존적 질문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남들이 다 가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이전에 가보지 않던 나만의 샛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 길이 누군가의 길과 만날 때
그 길이 누군가에게 길이 되어줄 때
우리는 그것을 '성공한 삶'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서사'예요.
더 화려한 기술 스택, 더 많은 프로젝트 수, 나를 몰아세우는 맹목적인 노력.
정말 필요한 건 그런 껍데기들이 아니에요.
용기. 내 삶의 초라함까지도 있는 그대로 직면할.
성실. 남들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투박하더라도 매일 나만의 문장을 쌓아갈.
겸손.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는 것을 알기에, 언제나 학생으로 남을.
끈기.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지루한 침묵의 구간도 묵묵히 걸어가는.
회복 탄력성. 넘어짐을 '상처'가 아닌 '데이터'로 받아들이고, 다시 툭 털고 일어나는.
호기심. 당연한 세상에 끊임없이 '왜'라는 물음표를 던지는.
그리고, 낭만. 효율과 연봉 계산기 너머, 이 치열한 배움의 과정 자체를 사랑할 수 있는.
이것이 제가 10년 만에 무언가를 제대로 성취하는 경험, 즉, 서른 초중반, 순수 문과 비전공자로 시작해 2년 만에 IT 대기업 엔지니어가 될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이자, 전부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이 글에서 저는 기술 얘기를 하나도 안 했어요.
"상위 0.1% 성공 비결"
"네카라쿠배 합격 전략"
이런 자극적인 얘기도 하나도 안 했어요.
그런데 당신이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은 이 뉴스레터를 기다려온 사람일 거예요.
이 레터는요.
새 프레임워크 소식 없어요.
기술 트렌드 분석 없어요.
정답지 없어요.
대신,
멘토링에서 늘 시간이 없어 못다한 이야기들.
진지함의 농도가 너무 짙어서 책에서 차마 못 다룬 이야기들.
질문의 주어를 '나'로 바꾸는 법.
불안을 연료 삼아 고유한 서사를 만드는 법.
수많은 실패의 확률을 뚫고 기어이 마침표를 찍는 법.
여러분들의 이야기의 불을 지필 뜨거운 사유의 재료들을 드릴게요.
저는 이 레터를 통해 증명하고 싶습니다.
단단한 사유야말로, 개발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압도적인 엔지니어링 능력이라는 것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게 매월 마지막 날, 당신의 메일함에 도착할게요.
발행
매월 마지막 날
작성자
그릿
주제
엔지니어링, 커리어, 방향,
마인드셋, 철학
대상
생각하는 개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