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
by 그릿 | GROWTH_ESSAY | 2026-04-12
#성장 #멘토링 #커리어멘토링에서 한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회사 다니면서도 선배가 가르쳐주는 게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가 다녔던 회사들에는 그런 거 전혀 없었고 각자의 분위기가 많이 컸어요."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워본다는 개념을 잘 몰라요. 이러다 보니까 저에 대한 방향성이 맞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3년차 개발자였습니다. 3년 동안 누군가에게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각보다 많은 개발자들이 이런 상태에 있습니다.
가르침이 없는 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회사에 가르침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코드 리뷰가 있습니다. 온보딩이 있습니다. 선배 개발자가 있습니다. 모르면 물어보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 가르침의 내용입니다.
코드 리뷰가 있다고 써있지만, 실제로는 "B 고치면 됨"이 리뷰의 전부입니다. 왜 B인지, A 대신 B를 선택한 이유가 뭔지,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지. 이런 맥락은 없습니다.
모르면 선배에게 물어보라고 하지만, 돌아오는 건 "고민하지 말고 빨리 정답 받아서 처리해"입니다. 왜 그게 정답인지는 설명이 없습니다.
가르침이 없는 게 아닙니다. 가르침의 탈을 쓴 지시만 있습니다.
지시는 일을 처리하게 합니다. 하지만 성장시키지는 않습니다.
방향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배움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두 가지를 잃습니다.
하나는 지식입니다. 이건 눈에 보입니다. 모르는 게 많습니다. 기초가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방향 감각입니다. 이건 눈에 안 보입니다. 하지만 더 치명적입니다.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어디가 부족한지, 뭘 더 해야 하는지. 아무도 말해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달리고는 있는데, 이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안합니다. 계속 불안합니다.
지식은 혼자서도 채울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검색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방향 감각은 혼자서 얻기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비춰줘야 합니다.
혼자 헤쳐나가는 사람
이 분은 혼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거를 제 스스로 헤쳐나가기 위해서 개인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했어요. 방향성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는 거예요. 안 해보는 것보다는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겁니다. 아무도 안 가르쳐주는 환경에서, 스스로 부족함을 인식하고, 스스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의지는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혼자서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이게 잘 만든 건지 모릅니다. 나름대로 설계했는데, 이게 좋은 설계인지 모릅니다.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뭐가 부족한지 모릅니다.
거울이 없으면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피드백이 없으면 자기 코드를 볼 수 없습니다.
거울이 필요합니다
성장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스스로 움직이는 의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합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부족한 걸 채우려고 합니다. 이게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둘째, 그 움직임의 방향을 비춰줄 거울.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뭐가 부족한지 알려주는 존재. 피드백을 주는 존재. 방향을 점검해주는 존재.
의지만 있고 거울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열심히 달립니다. 하지만 제자리를 맴돕니다. 방향이 맞는지 모르니까요.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1년을 달려도, 3년을 달려도,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거울만 있고 의지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피드백을 받아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끝납니다. 바뀌지 않습니다. 시간만 갑니다.
둘 다 있어야 합니다. 의지가 있어야 움직이고, 거울이 있어야 방향이 맞습니다.
배움의 경험이 주는 것
누군가에게 제대로 배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아, 이게 부족하구나"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족함을 인식하는 법을 압니다.
"이건 잘했다"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강점이 뭔지 압니다.
"이 방향으로 가봐"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잡는 법을 압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나중에 혼자서도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내면에 거울이 생기는 겁니다. 스스로 피드백을 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 경험이 없었던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내면에 거울이 없습니다. 스스로 피드백을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불안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확신이 안 생깁니다.
구조적 문제입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조적 문제입니다.
많은 회사에서 가르침이 없습니다. 있어도 지시일 뿐입니다. 코드 리뷰가 있어도 "B 고쳐"로 끝납니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바쁘니까요. 일정이 빠듯하니까요. 가르칠 시간이 없으니까요.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그 결과, 3년차가 되어도 기초가 없는 개발자가 양산됩니다. 방향 감각 없이 불안해하는 개발자가 양산됩니다.
그리고 그 개발자들은 스스로를 탓합니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 "내가 열심히 안 해서 그래."
아닙니다.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거울이 없었던 겁니다.
정리하면
"누군가에게 배워본 적이 없다."
이 말은 단순한 환경 탓이 아닙니다. 한국 개발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입니다.
배움의 경험이 없으면 두 가지를 잃습니다. 지식, 그리고 방향 감각. 후자가 더 치명적입니다. 방향 감각 없이 아무리 달려도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성장에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의지, 그리고 그 움직임을 비춰줄 거울.
의지만 있고 거울이 없으면, 열심히 달리되 제자리를 맴돕니다.
혼자서 헤쳐나가는 건 대단합니다. 하지만 거울 없이는 한계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워본다는 건, 지식을 받는 게 아닙니다. 거울을 얻는 겁니다.